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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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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놀이, 신명에 실어 시름을 날리다
  • [특별전시]
  • 탈놀이, 신명에 실어 시름을 날리다
  • 전시기간 : 2019-12-10(화) ~ 2020-02-23(일)
  • 전시장소 : 국립무형유산원 누리마루 2층 기획전시실
탈놀이, 신명에 실어 시름을 날리다
특별전을 열며

우리 조상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탈을 사용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나쁜 기운을 쫓 아내기도 하였으며, 좋은 때를 맞이해 마을에서 탈놀이를 펼치기도 하였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우리 탈놀이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쁜 것을 막고자 하는 바람으로 행해지거나, 왕실의 안녕을 비는 의식이나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공연으로 행해지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나 오락으 로 민중의 삶을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 탈놀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를 극복하기 위한 학자들과 연희자들의 노력으로 사라져가던 전통문화에서 국가 무형문화재라는 정비된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우리 탈놀이, 그 오래된 시작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복을 빌거나 액厄과 탈頉을 막기 위해 탈을 썼다. 섣달 그믐날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처용탈을 쓰고 춤을 추던 전통은 우리나라 각 지역의 특색 있는 탈놀이로 이어졌다. 탈은 놀이문화 속에 스며들어 액을 쫓 고 공동체의 평안과 화합을 바라는 마을굿으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 삼국사기 향악잡영 오수 三國史記 鄕樂雜詠 五首(Assorted Verses of
          Ancient Korean Performances,
          Five Poems in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김부식金富軾, 1145년(1760년본), 31cm x 20.6cm, 목판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위:목은집 구나행 牧隱集 驅儺行(Performing an Exorcism
            in Collection of Mogeun's Works), 이색李穡, 1404(1621년본), 27.5cm x 18.5cm,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우: 처용處容(Cheoyong), 2016년, 60cm x 50xm, 나무
탈놀이의 꽃을 피우다 - 산대山臺 놀이

고려시대 궁중에서는 섣달그믐날 묵은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은 나례儺禮를 행하였다. 마당에 산대를 설치하고, 탈놀이 등 잡희雜戱를 행하여 산대희山臺戱·나희儺戲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산대희가 조선에 전해져 연행되다가 조선 후기에 점차 세속화되어 현전 탈놀이의 모태가 되었다.

  • 상:봉사도 제7폭 奉使圖 第七幅(Panel 7 of Serving as an Envoy), 아극돈阿克敦, 1725년, 42.5cm x 29.2cm, 종이에 채색, 복제, 중국 민족도서관, 하:경도잡지 성기 京都雜志 聲妓(On Vocal Performances
              Miscellaneous Records
              on the Capital City), 유득공柳得恭, 1800년 전후, 28.2cm x 19.3cm, 필사본,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 화성성역의궤 낙성연도 華城城役儀軌 落成宴圖(A Banquet upon the Completion of
                the Construction Work
                Royal Protocol for the Construction
                Works of Hwaseong Fortress), 1801년, 34cm x 21.7cm, 활자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양한 탈놀이의 유형

우리나라 탈놀이는 산대놀이 계통과 마을굿놀이 계통으로 구분된다. 국가무형문화재 탈놀이 중 산대놀이 계통에는 봉산탈춤, 은율탈춤, 강령탈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동래야류, 수영야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 남사당놀이(덧뵈기)가 있다. 마을굿놀이 계통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 북청사자놀음, 강릉단오제(강릉관노가면극)가 있다.

  • 좌:하회별신굿탈놀이 갓각시(Mask Dance Drama of
                  Hahoe - Bride), 고려, 29.6cm x 26.8cm, 나무, 안동하회마을보존회, 국보 제121호, 우:봉산탈춤 취발이(Mask Dance Drama of
                  Bongsan - Chwibari (Drunk
                  Apostate)), 1970년대, 31cm x 23cm, 종이, 봉산탈춤보존회
  • 좌: 송파산대놀이 신할아비(Mask Dance Drama of
                    Songpa - Grandfather), 1960년대 26cm x 19cm, 바가지, 송파산대놀이보존회, 중:통영오광대 홍백양반(Mask Dance Drama of
                    Tongyeong - Hong-Baek
                    (Red-and-White Faced
                    Nobleman)), 1980년대, 25cm x 20cm, 바가지, 통영오광대보존회, 우:동래야류 말뚝이(Mask Dance Drama of Dongnae -
                    Malttugi (Horse-Staker)), 천재동千在東, 1970-80년대, 39cm x 60cm, 바가지, 동래야류보존회
우리 탈놀이, 신명을 잇다

20세기 초 국운이 기울어 탈놀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탈놀이 공연도 이어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에서 연희자들은 탈놀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학자들은 탈놀이 연행에 대한 현지조사와 구전채록口傳採錄을 통해 날놀이가 지닌 신명을 잇고자 하였다.

  • 좌:눈끔적이(Blinker), 19세기 후반, 33cm x 17cm, 나무, 서울대학교 박물관, 중:먹중(Mask Dance Drama of
                      Bongsan - Apostate Monk), 1930년대, 27cm x 22.5cm, 바가지, 국립중앙박물관, 우:말뚝이(Malttugi (Horse-Staker)), 연대미상, 22cm x 18cm, 바가지, 서울대학교 박물관
  • 단가초短歌秒(Script of Mask Dance Drama of Goseong), 천세봉千世鳳, 1940-50년대, 18cm x 16cm, 필사본, 고성탈박물관
삶에서 예술로, 문화재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위축되었던 탈놀이는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계기로 활기를 되찾았다. 각지의 탈놀이 단체들이 대회에 참가하였고 탈놀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통문화를 보존 · 계승하고자 하는 사회적 움직임, 관련학계의 연구, 연희자들의 노력등에 힘입어 오늘날 총 14종의 탈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동래야류 공연사진(Mask Dance Drama of
                        Dongnae Performance), 1965년, 27.5cm x 36cm, 종이
  • 이두현 기증사진 - 가면극(Collection of Photographys Donated
                          by Yi Duhyeon), 2008년, 종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Intangible Cultural Heritage Holder
                            Certificate), 1971년, 29.1cm x 23.1cm, 종이
  • 봉산탈춤 고 양소운 보유자 공연사진(Performance of Yang So-un), 1968년, 8.3cm x 11.7cm, 종이
탈놀이, 새롭게 만나다

탈놀이는 문화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민중적 열망과 맞물려 1970-80년대에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70년대 이후 부터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연희자들과 국민이 함께 어울리는 탈놀이축제의 장이 마련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북한도 최근 민족유산보호법제정에 따라 봉산탈춤 등을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민속가면극연구회 소책자(Folk Mask Dance Drama
                              Study Group), 1970년대, 종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 연세탈춤연구반 정기공연 양주별산대놀이 소책자(Regular Performance of Mask Dance Drama of Yangju,
                                Mask Dance Drama Study Group of Yonsei University), 1975년, 21.5cm x 19.2cm, 종이, 개인 소장
  • 원풍모방노동조합 탈춤반 일지(Daily Log for Mask Dance Drama Club,
                                  Wonpung Woolen Textile Labor Union), 1979년, 25.4cm x 18cm, 종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탈춤 시위 사진(Yonsei University Students Mask-
                                    Dancing at an Anti-goverment Protest), 1986년, 종이, 정태원
지역별 탈놀이
  • 산대놀이 / 서울 · 경기

    궁중 산대놀이에서 파생되어 서울 사직골, 녹번리, 애오개(아현), 노량진 등에서 전승되었다. 양주와 송파에서 서울 근교 산대놀이를 배워 전승했다.

  • 탈춤 / 황해도

    황해도에서는 중국 사신을 환영하는 연희가 연행되었고 춤을 중요시하여 탈춤이라 부른다.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이 전해진다.

  • 오광대, 야류 / 경상남도

    오광대는 낙동강 서쪽 지역 탈놀이로 다섯 광대가 등장하거나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가 있다. 야류는 낙동강 동쪽 지역 탈놀이로 들놀음을 말하는데, 수영야류와 동래야류가 정슨된다.

  • 덧뵈기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던 예인집단인 남사당패는 풍물, 버나, 살판 등과 함께 탈놀이인 덧뵈기를 공연 종목으로 삼았다.

  • 마을굿놀이

    성황제에서 마을의 액과 잡귀를 막고 풍년을 빌며 놀았던 탈놀이다. 경북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원도 강릉단오제의 관노가면극 등이 있다.

국가 기정 우리 탈놀이의 종류
  • 제2호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
    1964년 지정

    한양의 본산대를 초청해 놀다가 고을 사람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 놀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 각 과장과 배역이 세분화되어 연극적 볼거리가 풍부하다.

  • 제3호 남사당男寺黨놀이(덧뵈기)
    1964년 지정

    꼭두쇠(우두머리)가 이끄는 남자 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패가 각지를 돌며 공연하는 종목 중 하나다. 재담과 연기의 비중이 우세하며 놀이판 분위기에 따른 가변성이 두드러진다.

  • 제6호 통영오광대統營五廣大
    1964년 지정

    19세기 말 초계 밤마리 장터의 대광대패를 배운 창원오광대의 영향으로 현재와 같은 탈놀이가 시작되었다. 서민생활의 애환을 잘 보여주고 양반에 대한 풍자가 신랄하다.

  • 제7호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1964년 지정

    경상남도 고성 지역에서 1910년경 남촌파南村派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시작하여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았다. 함께 어우러져 추는 춤이 많다.

  • 제13호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강릉관노가면극)
    1967년 지정

    강릉단오제의 일환으로 관노들이 맡아서 한말까지 이어졌다. 성황신을 모시는 제의의 성격이 강하다. 각 과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묵극黙劇 형식이다.

  • 제15호 북청사자北靑獅子놀음
    1967년 지정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대보름에 사자탈을 쓰고 놀던 민속놀이다. 잡귀를 쫓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행사로 널리 행해졌으며 마을의 단결과 협동을 도모하였다.

  • 제17호 봉산鳳山탈춤
    1967년 지정

    황해도 봉산 지역에서 향리들의 활약으로 발전했다. 중국 한시 구절을 인용한 대사가 많고, 춤사위가 활발하다.

  • 제18호 동래야류東萊野遊
    1967년 지정

    부산 동래 지역에서 밤마리 대광대패의 영향을 받은 수영야류를 보고 시작되었으며, 정월대보름날 줄다리기와 함께 행해진다.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주를 이룬다.

  • 제34호 강령康翎탈춤
    1970년 지정

    명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늦어도 조선 후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탈을 쓰고 부드러운 느낌의 장삼춤을 주로 춘다.

  • 제43호 수영야류水營野遊
    1971년 지정

    부산 수영구에서 정월대보름에 최영장군 묘에 제사 지낸 뒤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며 연행한다. 오광대의 영향을 받았으나 토속적인 제의와 결합되었다

  • 제49호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
    1973년 지정

    송파마을에서 약 200년 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춤과 배역이 옛 형태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 제61호 은율殷栗탈춤
    1978년 지정

    황해도 은율 장터에서 단옷날 놀던 탈춤이다. 호색적인 표현이 많고, 양반을 모욕하는 대목이 강조된다.

  • 제69호 하회별신河回別神굿탈놀이
    1980년 지정

    3년, 5년, 10년 주기로 행하는 별신제에서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에게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하며 탈놀이를 연행하였다

  • 제73호 가산오광대駕山五廣大
    1980년 지정

    조선 후기 조창으로 번창한 가산마을에서 전승되었다. 의령 신반리 대광대패를 본받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오방신장, 다섯 무당이 나오며 영감이 죽는 것이 특징이다.

메뉴담당자 : 무형유산진흥과 유혜민 ☎ 063-280-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