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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에서의 중앙아시아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 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일컫지만, 문화적 의미에서의 중앙아시아는 매우 넓은 지역을 포괄한다. 동쪽으로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서쪽 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을 넘어 터키, 남쪽으로는 아무다리 야 상류 이남의 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는 몽골과 바이 칼 지역을 지나 레나 강 유역의 사하공화국까지에 이르 는 광대한 지역이다. 북 카프카스와 볼가 강 유역 역시 문 화적 의미의 중앙아시아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이렇게 설명하다 보면, 중앙아시아의 한축이 레나 강 유 역에서 시작해 바이칼 호수, 알타이 산맥, 천산산맥, 파미 르 고원을 지나 힌두쿠시 산맥 북부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의 중심, 그래서 중앙아시아라 불리는 것 이다. 중앙아시아는 중국, 아랍 및 페르시아, 인도, 슬라 브 문화 사이에 끼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문 화가 흐르는 곳이며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아시아의 심 장이다.

이렇게 광대한 문화적 의미의 ‘중앙아시아’를 몇 개의 문 화적 키워드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중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유목’ 이다. 모든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유목을 생업으로 가지 고 있진 않지만,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투르크계와 몽 골계 민족들 중 일부는 정주문화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유목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에게 유목은 일 상의 일부 인 동시에 세계시장 속 국가경쟁력을 키워줄 문화콘텐츠의 원천이면서, 국가정체성의 기초이기도 하 다. 이런 맥락에서 몽골의 ‘나담’ 축제, 키르기스스탄의 ‘세계 유목민 게임’, 카자흐스탄의 ‘세계 유목민 축제’ 등 은 이 민족과 국가들의 유목전통이 현대에서 어떻게 해 석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정주문화 기반의 도시화와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유목’이라는 개념은 흥미롭고 독특한 상상 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이를 간파한 할리우 드 영화 제작자들은 1980년대에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통놀이인 ‘콕보루’를 <람보 3>의 소재로 사용하였고, 전 세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대항해 싸우는 말 타는 전사 람보를 보게 되었다. 이처럼 중앙아시아의 유 목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확장 버전들은 예상치 않은 곳 에서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등장한다.

 

우리에게 중앙아시아의 ‘유목’이 상상 속 문화콘텐츠의 소재인 것과 달리, 일부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유목’은 일상이다. 다른 말로, 진짜 삶이다. 정주민 관점에서 이름 지어진 한자어 ‘유목(遊牧)’은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동물을 기르는 일’이라 해석된 다. 그래서 ‘놀다’ 또는 ‘이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유(遊)’ 와 동물을 기르는 ‘목(牧)’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우 리는 정주민의 관점에서 유목민을 욕심도 없이 정한 바 가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 다. 우리만의 ‘노마드’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것 이다.

하지만 유목민도 계절마다 머물어야 하는, 정함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집이 있다. 이들의 삶은 상상하기 쉬운 유유자적한 삶과 거리가 멀 다. 정주민인 농부가 한해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이 되길 기 원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열심히 짓는 것처럼, 유목민도 계절에 따라 정해진 곳으로 이동하면서 동물을 기르고, 동물들이 살찌는 동시에 새끼를 많이 낳아 더 많은 동물 을 소유하길 원한다. 이들에게 유목의 삶은 매우 규칙적 이며, 자연의 영향에 의해 삶과 죽음이 나누어지기 때문 에 자연 중심적이다.

 

유목민의 자연 중심적 삶은 “동물들이 먹고 마시는 풀과 물(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 풀과 물을 주는 계절 과 날씨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목민이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인 세계관은 음식, 집, 마 을, 가족관계, 혼인, 갈등, 우주에 대한 이해, 민족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 서 이들이 말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을 대하고, 음식을 만 들어 사람들을 대접하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몽골 다큐멘터리 <초원의 선물 ‘아이락’>에서 숨 결만 빼고 동물의 모든 것을 활용하는 몽골인들이 말 젖 발효유 ‘아이락’과 아이락을 만드는 가죽 통을 만들고 이 를 다시 후손들에게 전승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을 것이 다. 키르기스스탄 다큐멘터리 <크므스 맛의 비밀>에서 는 천산산맥의 자일루(목초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키 르기스인들이 크므스를 만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방식에 서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다큐멘 터리 <봄과 함께 달리다>에서는 유라시아 평원의 한복 판에서 살아가는 카자흐인들의 유목전통에서 말과 크무 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 세편 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상상 속 ‘중앙아시아의 유 목’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
전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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