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설립한 한국전통문화대학에 재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우리문화와의 심도짙은 소통을 위한 잦은 답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필자가 수강중인 무형문화재론 수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답사를 통하여 무형문화와 직접 대화하고 느낄 수 있었는데, 이를 답사기의 형식을 통하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답사단은 면천두견주제조, 채상소고춤공연, 한지제작의 현장을 방문하였다. 여기에서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식보다는 필자가 현장에서 배운 점과 느낀 점을 중점을 두고 써내려가고자 한다.
소주와 맞먹는 알코올 도수임에도 불구하고 달달하면서도 진한 면천두견주
▲ 면천두견주와 고들밥
면천두견주보존회에 도착하자마자 이른 아침부터 기분 좋게 일단 두견주를 한잔 할 수 있었다. 장독에 담겨있는 두견주를 표주박으로 푹 떠서 고들밥과 함께 들이키면 그 어느 누구도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맛은 달달하면서도 진하고, 도수 또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18도로 적당하였다. 이런 술맛이야말로 모든 취향의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밥과 잘 어울리는 점에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음식과 술을 함께 섭취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아주 적합함을 느꼈다.
보존회 회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두견주를 만들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누룩을 밟는 작업이라고 한다. 공기가 많이 들어가면 누룩이 산화되므로, 우리네 조상들은 힘을 가중하기 위하여 일부러 아이를 업고 방아를 밟기도 하였다고 한다.
면천두견주의 전통적 제작방식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맛있는 안샘(泉)의 물과 건강에 좋은 여러 가지 영양요소를 가지고 있는 두견화라고 한다. 예로부터 ‘술은 물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허나 안샘이 오염될 위기에 처해있어 너무나도 안타까웠으며, 두견화 또한 요즈음에는 외래종에 밀리어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한다. 경주교동법주가 그들의 우물을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처럼, 면천두견주를 잃지 않기 위하여 환경변화에 대한 대책 강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전통주 활성화를 위하여 대중화에 힘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사성과 명성을 잃지 않도록 전통적인 제조법을 지켜 그 품질 유지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 여러 종류의 채상모를 설명해주시는 선생님
손연재의 리본보다 숨막히는 채상소고춤이 그려내는 곡선
세계에서 채상소고춤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엄밀히 말하면 조선족)이다. 채상소고춤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는 채상모에도 몇 개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대(帶)와 모(帽)를 이어주는 부분의 재료가 돌인지 금속인지에 따라 끝에 달린 헝겊 부분이 자아내는 느낌이 다르다.
5살 때부터 우리의 전통놀이를 지켜오신 김운태선생님께 배운 가장 큰 것은 우리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부심이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말로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다니면서 실천하고 계시다는 점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채상소고춤을 체험해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답사단과 같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의무와 책임 또한 소중하고 막중함을 강조하셨다.
천상 전통예술인답게 선생님께서 채상모를 돌리실 때의 헝겊은 소리 없이 움직이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특히 마지막의 곡선은 세계의 그 어떤 리듬체조 선수가 그려내는 리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의 뇌리에 신기루처럼 남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채상소고춤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
또한 선생님께서는 채상소고춤의 기본적인 움직임과 ‘신명을 즐기는 법’을 직접 시범 보이며 알려주셨다. 그리고 답사단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선생님의 제자들께서 즉석에서 부르고 연주해주시는 전통음악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채상모를 돌리며 소고를 쳐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니 비로소 ‘신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또 ‘아, 이것이 한국인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신명이라는 것인가’ 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강하게 스쳤다.
전통이라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기에 아무리 전통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유전자에 전통문화 흐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굉장히 신명나고 아름다운 한국의 것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이론적인 부분인 학업과 현장감을 위한 답사에 매진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세계의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우수함을 간직한 한지
그림 참닥나무
한지장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한지 제작에는 1년생의 닥나무만을 사용함)가 촉촉한 가을비를 맞으면서 늘어서 있는 밭이 보였다. 한지를 제작하는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여기는 물과의 전쟁입니다’였다. 잿물, 황촉규를 이용하여 닥나무 섬유를 풀어놓는 물의 농도 조절 등이 한지를 제작하는 데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 외발뜨기(흘림뜨기)로 한지를 제작하고 계시는 선생님
우리나라의 한지와 비슷한 일본 화지와의 차이점을 배우면서 한지의 우수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제지기술은 고려시대부터 우수하여 중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지는 일본인이 한반도의 제지기술과 함께 닥나무를 일본열도로 가져간 것에 그 뿌리를 둔다. 그러나 일본은 산업화를 겪는 과정에서 외발뜨기(흘림뜨기) 틀을 개량하여 쌍발뜨기(가둠뜨기)로 화지를 대량생산하여 일찍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외발뜨기로 제작한 종이는 쌍발뜨기로 제작한 그것보다 훨씬 그 질이 뛰어나기에 일본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지하고 한지를 수입해가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네들의 전통종이로 유명한 일본보다 훨씬 뛰어난 종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홍보나 전승에 있어서 아주 열악한 상황에 처하여 있다. 자국인이 아닌 오히려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이 한지의 느낌을 좋아하여 그것에 더욱 열광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전통문화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도 필요로 하는 것은 그 국민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다채로우며 친숙한 우리의 전통문화, 이번 해가 가기 전에 대화를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 김은경
한국의 전통문화와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고고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