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을 맛보다’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장을 맛보다
장醬과 수라水刺
문화재청은 서울유산연구원과 함께 10월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경복궁의 장고에서 조선시대 궁중음식 특강, 궁중음식 전시, 궁중 장과 장을 이용한 궁중음식 만들기 시연회와 시식의 기회를 마련하는 ‘장과 수라’ 행사를 개최하였다.
경복궁의 장고醬庫는 궁중에서 장독을 관리하고 보관하던 곳으로 민가의 장독대 또는 장곳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2001년에 발굴하여 2005년에 복원된 장고는 2011년에 일반에게 재개방한 이래로 궁중장, 궁중음식, 전통 옹기 등 관련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그 위치는 경복궁 함화당과 집경당의 서쪽이다. 그동안 경복궁의 장고는 장소의 박물관화를 탈피하여 옹기 전시와 장 담그기, 옹기제작 시연장소로 다양하게 활용되어 조선시대 궁중의 생활상을 알리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이번 행사에서도 2012년 4월 경복궁 장고의 개문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담근 된장과 간장이 사용되어 장소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서 나아가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 경복궁 장고의 전경
26일에는 본행사에 앞서 오후 1시부터 90분간 함화당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가 ‘문헌으로 살펴보는 궁중음식’이라는 주제로 궁중음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3시부터 내빈과 사전예약자들을 대상으로 막장과 궁중음식 만들기 시연행사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기능보유자인 한복려에 의해 이루어졌다.
막장은 막 담가 먹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메주를 가루로 빻아 찰밥이나 보리밥, 삶은 콩과 함께 소금물로 개어 두었다가 보름 후면 먹을 수 있게 담근 된장으로 이날 그 과정이 시연되었고 궁중음식은 궁중 상추쌈차림이 준비되었다. 상추, 쑥갓, 가는 파와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만든 장똑도기, 절미된장조치, 병어감정, 보리새우볶음, 약고추장을 흰쌀밥에 곁들인 상추쌈차림의 조리과정을 시연하고 이와 함께 장고에서 만든 장으로 만든 배추된장국과 팥시루떡이 함께 내어졌다.
시식이 끝난 후에는 일반관람객들의 관람이 이루어졌으며, 그 이튿날 27일에도 2회에 걸쳐 같은 수순의 행사가 시행되었다. 이외에도 수라상과 그 유래와 예법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궁중의 장을 담그는데 사용된 도구들을 행사가 이루어진 체험공간 옆의 궁중 장문화공간에 선보였다.
▲ 막장담그기 시연을 하고 있는 한복려와 도우미
▲ 막장담그기 시연을 준비하는 모습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야기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궁에서 차리던 음식으로 전통한국음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궁중에서 음식을 만드는 부서에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이 있었다. 생과방은 평상시의 수라 이외에 죽과 각종 전과·식혜·다식·떡 등 음료와 과자를 만드는 부서이다. 소주방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소주방은 아침과 저녁수라를 관장하는 곳으로 주식과 그에 따른 각종 찬품을 맡았다. 외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만드는 곳으로서, 궁궐의 다례나 진작進酌, 진연進宴, 진찬進饌등의 대소잔치는 물론 왕과 왕비나 윗사람의 생일에도 잔치음식을 준비하였다.
궁중에서의 일상식은 조석수라상과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祖飯床, 점심의 낮것상의 네 차례 식사로 나뉜다. 탕약을 드시지 않는 날에는 7시 이전의 이른 아침에 죽과 마른찬과 김치와 장을 차린 초조반상을 마련한다.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은 각각 오전 10시경과 오후 6~7시경에 받는데, 12첩 반상차림으로 원반과 곁반, 전골상의 3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라상차림은 기본음식인 밥·국·찌개·찜(또는 선)·전골·김치·장과 12개의 반찬으로 이루어진다. 밥은 흰쌀밥과 팥밥 두가지가 올려지고 반찬은 계절에 따라 육류, 채소류, 해물류의 다양한 재료로 조리법을 고르게 활용하여 올린다. 점심상은 낮것이라하여 평일에는 과일·과자·떡·화채 등의 다과반 차림을 하거나 미음·응이를 차리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는 장국상을 차린다. 왕과 왕비의 생신, 회갑, 세자책봉 등 왕족의 경사 때와 외국사신을 맞이할 때에는 연회식을 차린다.
▲ 막장의 재료들
▲ 궁중음식인 상추쌈시연모습
궁중의 식생활은 『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 각종 『진연의궤』,『진찬의궤』,『궁중음식발기』등의 옛문헌에 기록해 놓은 그릇,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명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알 수 있으나 현재 전승되고 있는 음식의 조리법과 상차림은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에게 전수받아 재현된 것이다. 한희순은 1971년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받은 ‘조선왕조궁중음식’의 기능을 가진 1대 보유자로 지정이후 1년간 황혜성 교수에게 전수하였다. 황혜성 교수는 2대 기능보유자가 되어 40년 동안 옛문헌 연구를 통해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여 전수교육에 힘썼다. 이후 그녀의 딸인 한복려와 제자인 정길자로 이어지고 있다.
살아 숨쉬는 4대궁 및 종묘 만들기
경복궁을 포함한 4대궁 및 종묘의 역사문화 자원을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2009년부터 추진된 ‘살아 숨쉬는 4대궁 및 종묘 만들기’ 사업은 '품격은 높게, 문턱은 낮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궁궐 콘텐츠를 확충하고 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경복궁 장고에서 개최된 ‘장과 수라’ 행사는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사전예약자 외에도 경복궁을 관람하고 있는 잠재 혹은 무관심 집단에게도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 내어 문화유산의 활용의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경복궁이라는 유형유산 안에서 무형문화유산인 궁중음식의 시연과 시식은 그 의미를 극대화시켰으며, 박물관이나 책 속의 수라상에 친숙함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음식의 조리방법 시연에 집중되었는데 여기서 나아가 이야기가 있는 궁중음식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전시나 조리방법과 더불어 음식을 사용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로서의 음식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각 지방에서 진수되는 특산물을 재료로 전문적인 나인들에의해 차려진 전통음식의 정수인 궁중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질에서 나아가 일종의 상징체계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집중된 왕조시대의 궁중음식은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먹는가 하는 내용을 포함하며, 사용하는 식기구까지에도 엄격한 구별 기준을 두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의례음식은 상징화되었고, 일상음식에서도 임금의 장수에 대한 바람을 넣어 의미화했다.
▲ 수라상차림
▲ 간장 담그는 재료와 도구들
우리가 궁중음식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처럼 의미가 담겨있고 풍부한 이야기거리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연행사와 더불어 각 음식이나 재료에 담긴 의미와 상징에 대한 설명, 수라예법 재현, 체험행사, 장과 수라와 관련된 궁중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다면 주부층이 주를 이루었던 관람객의 범위가 확대되고 전달 효과도 상승할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궁궐 활용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창덕궁 달빛기행, 덕수궁 풍류, 덕수궁 정관헌 명사와 함께, 창경궁 통명전 인문학 강좌, 경복궁 경회루 연향, 경복궁 자경전 다례체험, 경복궁 수정전 목요특강, 경복궁 장고 전통 옹기 제작 시연 등이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이 기존 건축물과 같은 유형문화유산 위주의 관람형태에서 벗어나 궁궐 내 다양한 무형 문화유산 콘텐츠를 경험하면서 궁은 입체적이고 적극적이며 활기 넘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태어나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