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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_매사냥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2-24 조회수5778

 

출처 : 한국화중앙연구원

 

 

 

우리나라 매사냥의 유래와 역사

 

매사냥은 고조선시대에 북방 민족인 “숙신족”으로부터 들어왔다. 백제 때는 이를 일본에 전해 주었고 일본은 또 미국 등 서구에 전파시켰다. 고려 때 에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고 매사냥을 국가적으로 관리 했으며 원나라에 해동청 보라매라는 사냥매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또 조선시대에는 ‘내응방’이라는 관청을 두고 군역 대신 매를 잡게 했으며, 그 후 일제 때는 허가제 아래에서 매사냥의 맥이 이어졌다. 그 후 매의 사육과 품이 많이 들어 점차 자취가 끊기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중국의 황제들이 자꾸 매를 요구하여 이를 두고 조정에서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세종 10년(1428) 강직한 심성을 가진 정흠지(鄭欽之)가 중국에 매를 공물로 받치는것을 참지 못하고 세종에게 아뢰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 매를 포획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백성들의 소요(騷擾)가 더할 나위 없이 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사냥의 소개

 

 매사냥은 겨울에 시작해서 음력 2월까지 주로 한다. 매사냥을 나갈 때는 봉꾼, 보꾼, 털이꾼이 한 조가 되어 같이 한다. 봉꾼은 매를 들고 있는 사람, 보꾼은 망을 보는 사람, 털이꾼은 몰이하는 사람이다. 봉꾼은 매를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 본다. 털이꾼은 개를 데리고 사방을 두드리고 다니면서 꿩이 날아오르게 한다. 꿩이 날아오르는 동시에 매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보꾼들은 매가 꿩을 채서 떨어지는 장소를 유심히 살핀다. 빨리 달려가서 매를 떼어놓지 않으면 포식한 매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매는 꿩을 잡은 뒤에 눈을 공격하고, 다시 골을 쫀다. 이때 성급히 꿩을 뺏어버리면 매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골을 파먹을 수 있게 한 뒤에 조심스럽게 꿩을 떼어내야 한다. 이렇게 꿩 골을 먹이는 것을 ‘골 단장시킨다’라고  표현한다.

 

 

매사냥에 필요한 도구

 

 

 

우리나라 사냥매의 종류와 이해

우리나라의 매는 예로부터 워낙 유명하고, 매사냥이 유행한 탓에 매를 부르는 용어도 다양하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는 우리나라 매의 종류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저서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는 지방 풍속에서 부르는 매의 뜻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 보라매(甫羅鷹)  - “당년(當年)에 깬 매로 길들인 것을 일컫는다. 보라(甫羅)라는 것은 방언(方言)으로 담홍색(淡紅色)을 말하는 것인데 매의 깃털 빛깔이 엷기 때문에 이른말이다.

 ? 산  진(山陳) - 산에서 여러 해를 산 것을 일컫는다.
 ? 수  진(手陳)  - 집에서 여러 해 기른 것을 일컫는다.
 ? 송골(松骨)과 해동청(海東靑) - 매 중에 가장 뛰어나고 털빛이 흰 것을 송골 (松骨) 이라하고 털빛이 푸른 것을 해동청(海東靑) 이라고 한다.  

 

 


‘한국의 매사냥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 등재’

 

이러한 우리나라의 “매사냥”은 지난 2010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벨기에, 프랑스, 몽골 등 11개국의 매사냥과 함께 공동으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박정오 매사냥 보유자(출처:문화재청)

 

특히 진안군의 매사냥은 오늘날까지 그 전승의 방법이나 사냥법, 도구제작 등의 기능전승이 다른 지역 보다 우수한 지역으로 박정오 매사냥 보유자(69·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0호)가 전통적 기법과 제작기능, 관련도 등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매사냥술 맥을 잇는 무형문화재는 박정오(69·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0호)씨 와 그 문하생인 대전 박용순씨(50·대전시지정무형문화재 제8호) 등 단 2명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 된지도 2년이 넘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한국매사냥”의 보전과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래된 가치와 역사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계속해서 전해지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 공유되고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김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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