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기 혼수품은?
-중요무형문화재 53호 채상장-
과거 조선시대는 천민에서 양반까지의 계급이 나누어지는 명백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런 신분제 사회 속에서는 계급에 따른 다양한 제약이 삶 속에 따랐다. 그러나 혼례를 치르는 결혼식 날에는 모든 여자들에게 신분상 입을 수 없었던 옷을 입을 수 있게 허용하였다. 그래서 결혼식에는 평민 신부들도 공주나 옹주처럼 모란과 봉황이 새겨진 활옷을 입을 수 있었다. 조선의 여인들의 로망의 드레스가 모란과 봉황이 그려진 활옷이었다면, 과연 조선의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혼수품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53호 채상장에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3호 채상장이란?
▲출처 : 문화재청
▲출처 :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chaesangjang )
채상장은 대나무 껍질을 얇게 저며 물을 들여 다채로운 무늬로 엮는 기능 또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과거 채상은 궁중과 귀족층의 여성들이 즐겨 사용한 공예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양반뿐만 아니라 서민들까지 혼수용품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채상은 주로 옷과 장신구, 바느질 그릇, 귀중품을 담는 용기 등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고급 공예품이자 혼수품으로 사랑받았다. 혼수감을 담는 용도로 채상 역시 중요한 혼수품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또한 채상은 임금이 승하할 때 봉물을 담아내는 용도와 옛 선비들이 궁중에 야근을 할 때 입을 옷을 담아가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채상의 제작기술에서 핵심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떠내는 것이다. 대나무껍질은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다. 떠낸 대나무 껍질은 물에 불리는 과정을 거쳐서 무릎에 대고 일일이 다듬어 정리한다. 그 후 다채로운 색상으로 염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염색이 완료되면 1~5가닥씩 엇갈려 가며 엮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드는 채상의 무늬는 주로 완자, 수복, 강녕, 십자, 번개, 줄무늬 등으로 길복을 추구하는 길상적인 무늬들이다.
▲대훌치기 모습 (출처 : 문화재청)
▲바닥 절기 중인 모습 (출처 : 문화재청)
전통적인 채상과 현대적인 채상
플라스틱의 보급과 다양한 용기의 발전으로 채상의 위기가 오게 되고, 이로 인해 채상과 채상장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오늘날에 전수되고 보급되었다. 채상장에 의해 전수되고 있는 채상의 모습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 그 시절의 기능과 디자인을 고스란히 보전하는 채상과 오늘날의 사람들의 취향과 필요를 반영한 형태의 채상이 두 가지 갈래로 보전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장신구, 바느질도구, 귀중품 등을 담는 용기의 용도로 이용된 채상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후자의 경우에는 오늘날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핸드백,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격인 조명, 의자 등의 다채로운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조선의 여인들을 사로잡은 채상의 모습>
채상은 임금이 승하할 때 봉물을 담아내는 용도와 옛 선비들이 궁중에 야근을 할 때 입을 옷을 담아가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채상’이라하면 여인들의 삶과 조금 더 밀접한 느낌이 전해지는 물건이다. 그때 그 시절 여인들을 사로잡은 채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장인들의 손에서 얇고 가늘게 쪼갠 대나무에 빨강, 파랑, 노랑 채색하여 만든 상자들의 모습을 보며 과거를 엿볼 수 있다.
▲ 출처 :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chaesangjang)
<21세기의 여심을 사로잡은 채상의 모습>
오랜 세월 장인의 손끝에서 전해진 채상을 만드는 방법과 기술을 바탕으로 오늘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와 취향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채상들이 등장하고 있다. 물건을 담는 용도에 중점을 두었던 과거 채상과 달리 조명, 가방, 의자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품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 출처 :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chaesangjang
채상의 역사를 엮어온 곳, 담양
‘대나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도시가 있으신가요? 한반도 끝자락에 자리매김한 대나무의 고장 ‘담양’이 바로 형형색색의 채상의 역사를 엮어 온 대표적인 곳이다. 채상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보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채상조(彩箱條)’에 ‘호남사람들은 대를 종이같이 다듬어서 청색과 홍색 등 여러 가지 물을 들여 옷상자 등으로 썼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이규경의 『죽점침』에는 ‘옷상자는 호남의 담양이 가장 뛰어났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담양이 오래 전부터 채상으로 유명했음을 알 수 있다. 채상의 기능 보유자인 서한규 씨는 김동연 옹으로부터 담양지방의 전통적인 기법을 배워 익혀 오늘날까지 꾸준히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이들 채상장의 기예능전수관은 담양 죽녹원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장인들의 다채로운 작품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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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