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세계의 인류를 대표하는 무형유산
지난 5일, 제7차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정부간 위원회’에서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대표목록에 등재할 것을 확정했다. 당시 심사보조기구는 "아리랑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됐으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아리랑에는 대단한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어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유산 전반의 가시성 향상과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의 제고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에서는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겨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리랑의 경우에는 세대를 거쳐 ‘다양한 형태로 재창조’되어 전승되는 모습을 세계로부터 높게 평가받아 인류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리랑이 한민족과 함께해온 길
그동안 아리랑이 한민족과 함께 해온 길을 살펴보자. 먼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을 찬미하는데서 유래하였다는 설, 『매천야록』의 ‘1894년 2월 고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동궁을 수선하면서 노무자들을 격려하기위해 밤마다 광대를 불러 신성염곡을 연주하게 했는데, 그것을 일러 아리랑 타령이라 한다’는 기록 등이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그리고 경복궁 중건(1865~1872)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서울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아리랑의 잡가화 및 전국적인 확산과 변이가 이루어졌다. 이후에는 당시 세태와 풍속을 담아 잡가로서 주로 도시에서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졌다. 또 잡가집 · 축음기· 음반과 같은 미디어 등의 출현에 영향을 받으면서 소설, 연극, 영화의 민족문화예술의 중심테마로서 전역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28년에는 나운규감독에 의해 영화 주제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침략과 착취에 대한 항일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민족혁명투쟁을 고취하는 노래로 불리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민중의 생활과 분단의 현실, 민주화와 통일의 바람을 담기도 하였다. 아리랑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음은 한국 외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의 동포사회에서도 불리어진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최성환에 의해 ‘아리랑 환상곡’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윤도현밴드에 의해 2002년 월드컵의 응원곡으로 불러지기도 하였고, 2011년 벤쿠버 올림픽에서는 김연아의 작품 ‘Homage to Korea'으로 사랑을 받는 등 그 끊임없는 재탄생이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리랑과 국립무형유산원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한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아리랑이 현재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한국의 무형문화유산법은 그 범위를 기능과 예능 위주로 한정하고 있으며, 원형유지를 보전원칙으로 하고, 보유자(보유단체)가 반드시 병행 지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개정된 무형문화유산법은 유네스코 협약을 반영하여 아리랑과 같이 구전되어오는 전통 및 표현도 포함하며, 원형고수에서 전통문화의 계승 및 발전을 지향하고, 아리랑 또는 김치와 같이 보유자(보유단체)가 없는 종목의 지정도 가능하도록 하였다.
어떠한 문화에 대한 ‘원형유지’라는 원칙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예전의 것을 100%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것에 담긴 해당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보전하고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사람은 변하고, 문화라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숨을 쉬면서 나아가는 것으로서, 때로는 과거의 원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여 재창조된다면 더욱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시대와 사람의 흐름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전승되어온 아리랑, 이제 국립무형유산원(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문형문화유산법의 개정’과 아리랑 국가무형 문화유산 지정, 아리랑 아카이브 구축, 아리랑 상설 및 기획 전시, 아리랑 학술조사 및 연구 지원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무형문화재 아리랑 전승 활성화 방안’을 배경으로 한국에 그 주체성을 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거듭 발전해나갈 모습이 기대된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김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