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의 종교와 원주민의 문화의 악수,
세부 시눌로그 축제:Sinulog Festival>
필리핀은 서양인에게 최초로 정복된 아시아의 식민지다. 현재 총 인구수 1억 400만 명 중 80%가 넘는 국민이 식민통치를 했던 스페인의 국교인 카톨릭을 믿고 있다. 특히 침략자 마젤란이 들인 유입종교가 국교로 떠받들어 지고 있다. 더불어 침략의 흔적을 필리핀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부 시눌로그 축제:Sinulog Festival>는 침략자의 종교와 피지배층인 필리핀의 전통문화가 ‘융합’된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시눌로그 축제(Sinulog Festival)의 어제와 오늘
<사진1. 세부 시눌로그 산토리뇨상 >
탐험가 마젤란이 세부에 카톨릭을 전파하고, 산토니뇨(아기 예수상)을 라자후마본 왕의 아내인 하라 아미한(Hara Amihan, 후에 주아나 여왕)에게 선물로 준다. 그때 왕과 800명의 신하들이 세례를 받게 된다. 그 후 마젤란은 막탄(세부 북부의 큰 섬)의 족장인 라자 라푸라푸와 소수의 인원으로 싸우다가 전사한다. 이때가 1521년 4월 27일이었다. 그 후 살아남은 그의 부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가 이 사고를 알렸지만, 44년 후에 다시 원정이 재개된다.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sp)가 세부에 도착한 것은 1565년 4월 28일이었다. 마을을 포격했는데, 원정군인 중의 한 명인 주안 카무스(Juan Camus)가 불타는 오두막 한 곳에서 나무상자 안에 든 산토니뇨 상을 발견하게 된다. 원주민들은 불탄 오두막 속에서도 남아있던 산토니뇨 상을 기념하기 위해 춤을 췄다. 이것이 매년 1월 셋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시눌로그 축제가 되었다.
<시눌로그 페스티벌의 행렬 모습>
<시눌로그 페스티벌의 각기계층의 행렬모습>
<야간 시눌로그 페스티벌 콘테스트 모습>
오늘 날 시눌로그 축제는 필리핀의 역사적 재현행사이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눌로그의 시작은 필리핀 각 지방의 화려한 행렬의 막이 오른다. 이어 세부의 각기계층의 행렬이 이어진다. 세부의 센트럴 파크인 아얄라 몰(Ayala Mall)에서 과거 식민통치의 중심지였던 구시가지인 콜론(Colon)의 아기예수상이 모셔져 있는 산토니뇨 대성당을 거쳐 그 종착지를 오스메니아 후엔테 광장에서 마친다. 이후 가장행렬 경연대회와 거리에서 참가자과 관람객이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을 가지며 축제의 막을 내린다.
- 잊혀진 전통을 담은 시놀로그 춤(Sinulog Dance)
<시눌로그 페스티벌 행진 >
시눌로그 축제(Sinulog Festival)는 약 400년경 처음 시작된 축제이다. 시눌로그는 산토니뇨에 있는 ‘기적의 상(STO. NINO:아기 예수상)’을 기념하기 행사이다. 세부시민들은 성상의 기적을 기념하며 거리에 나가 춤을 춘다. ‘시놀로그 춤’은 필리핀 전통악기인 북에 맞춰 박자에 맞춰 아기 예수상을 들고 거리를 걸으면서 추은 춤이다. 이것은 현재 세부의 파히나 강으로 알려진 전통 춤과 많이 흡사하다. 역사학자들은 1521년 4월 7일 페르난디 마젤란이 이곳에 오기 이전에도 이러한 춤의 형태는 존재했으며, 목상과 ‘아니토’라는 영적 존재를 기념하는 춤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시놀로그 춤은’ 외부의 종교와 내부의 전통문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사진4. 시놀로그 축제에 참여한 한델 가나이테>
시눌로그 축제 현장에서 참가자인 한델 가나이테(handel Canate, 23)양은 “필리핀의 자랑이며, 세부의 상징 시눌로그 축제에 참여해서 즐겁고, 400년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서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눌로그 춤과 축제의 의미는 세부를 살고 있는 세부니오와 세부니아들에게 역사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 되었다.
-검은 피부의 아기 예수의 얼굴과 필리피노의 얼굴
<산토리뇨(아기예수)로 가장한 필리핀 어린이>
시눌로그 축제의 상징물인 산토니뇨(아기예수) 상의 검은 피부색은 마치 필리핀 사람들의 피부색과 닮았다. 산토니뇨상의 얼굴이 검은 이유는 스페인 군의 포격으로 인한 화재로 불에 그을려 검게 변했다. 필리핀 사람들 역시 침략으로 인해 그들의 땅과 자유를 빼앗겼다. 마치 화마를 입은 산토니뇨상과 스페인의 침략으로 식민지로 전략된 필리핀인들은 ‘동병상련’의 입장이었다. 필리핀인들은 식민의 고통과 한을 ‘불에 그을린 산토니뇨 상’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위로와 치유받기 위해 춤을 추게 됐다. 외래종교의 신이 곧 ‘자신’이 되었다. 지금도 필리핀인들은 자신과 같은 검은 피부의 산토리뇨를 바라보며, 시눌로그 축제를 통해 들의 고통과 회한을 고백하고 치유되길 기원하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특파원(필리핀 세부)
유은총 기자